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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6-17 09:22
[자녀와 함께 행복찾기]영어,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230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에 에워싸여 있고 정치적으로는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4대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의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동시에 언어적·문화적 순수성도 항상 위협받아 왔다. 조선시대에는 한문을, 일제 강점기에는 일어를, 해방 이후에는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다.

현재도 영어공부에 대한 과잉몰입이 요구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오렌지'를 '아륀지'라고 발음해야 하며 영어발음 개선을 위해 현행 외래어 표기법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정부 관계자들도 '글로벌 코리아'로 가기 위해서는 영어몰입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집권당의 영어정책에 대한 편협한 이해는 논외로 하더라도 영어몰입교육 주장은 일반 국민에 대해 심각한 언어 억압으로 작용했다.


'영어 물신화' 이제 그만
우리말 정체성 유지하며
이웃 국가 언어 습득해야
국민 모두에게 더 큰 도움


영어에 대한 잘못된 수용 자세는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예를 들어보자. 당시 '영어공교육 강화방안'의 하나로 영어권 대학생 400명을 '영어봉사장학생'으로 위촉했다. 그 사업비는 180억 원이었다. 대학생 1인당 4천500만 원이나 사용한 셈이다. 심하게 말하면 교육 수준은 논외로 하더라도 대학생 아르바이트비에 정규 영어교사나 학사 학위 원어민 교사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쓴 셈이다.

인수위의 '전 과목 영어수업'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영어 수업의 문제는 교육의 질마저 떨어뜨렸다는 논란을 사고 있다. 원활한 소통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최근 한 카이스트 교수는 '더 이상 전공 수업을 영어로 강의하지 않겠다'고 했다.

언어는 단순히 중립적인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 그 사회의 문화와 사고를 담아내는 도구이다. 그래서 외국어의 한계 때문에 표현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교수와 학생이 마주하는 강의실 분위기는 답답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대학은 학문 연구의 장이지 영어교육을 하는 곳은 아니지 않은가?

영어에의 지나친 동경은 정체성을 훼손할 뿐이다. 영어 수용은 맹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단지 영어만 잘한다고 국제 경쟁력이 수직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이 영어를 잘해서 경제대국이 된 것도 아니고, 필리핀이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경쟁력이 높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영어 수용법을 찾아야 할까?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 문화 민족 간의 교류와 융합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어와 전통문화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다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지혜롭게 받아들여야 한다.

요컨대 열린 민족주의와 다문화주의를 바탕으로 외국 언어와 문화를 창조적으로 변용하는 슬기가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필리핀의 사례는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된다. 1960년대만 해도 우리에게 필리핀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필리핀은 자국어인 타갈로그어가 있지만 미국을 동경한 나머지 공용어로 영어를 선택했다. 하지만 필리핀은 아직 '잘사는 나라'가 되지 못했다.

그와 반대인 네덜란드의 경우를 보자. 네덜란드는 국토 면적이 우리나라의 5분의 1에 불과하며 일찍이 BC 50년 로마군의 침공 이래 강대국 지배의 연속이었다. 그런데도 국민 대다수는 자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자유자재로 말한다. 네덜란드 출신인 거스 히딩크도 영어를 무리없이 자유롭게 구사한다.

네덜란드의 사례에서 우리는 자국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이웃국가의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 자국민에게 더 큰 도움이 된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 우리의 경우 비단 국가를 이끄는 위정자들만 앞에서 말한 편협한 생각을 할까? 우리 자신들도 부지불식간에 정체성을 잃고 영어를 물신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 출처 : 부산일보 2011.06.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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